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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경논술칼럼]월드컵과 문화 읽기
등록일 2006/06/29 조회수 10869
월드컵과 문화 읽기

<김종배 대성마이맥 사회·문화 강사>

2006년 월드컵의 열기로 온 국민을 하나로 묶은 󰡐6월의 함성󰡑은 우리 사회에 짙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 월드컵에 모든 세계인들이 집단적 열광을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밤 세워 응원했던 붉은 악마들의 그 열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월드컵과 관련하여 대중문화 시대의 스포츠는 어떤 문화적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대중문화 시대의 스포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포츠는 가장 대중적인 오락이며 규모가 큰 문화산업이다. 그 중 월드컵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권위 있는 국제적 규모의 축구 제전이다. 월드컵은 어마어마한 몸값을 가진 최고의 기량을 가진 프로 선수들이 펼치는 화려하고 현란한 몸동작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 세계에 위성 중계됨으로써 전 세계 수십억의 인구의 눈을 사로잡고 그들을 흥분과 카타르시스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놀라운 기능을 한다.
하나의 스포츠가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그것이 TV라는 막강한 미디어와의 결합에서 비롯되었다. 끊임없이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TV의 속성과 격렬한 신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줌으로써 시각적인 자극을 주는 스포츠는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게 되고 따라서 스포츠는 TV 편성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TV라는 매체는 스포츠를 하려한 볼거리로서의 이벤트로 변화시켰다. 이번 독일 월드컵 대회에서 FIFA는 옵사이드(off side)룰을 완화하는 조치를 내렸는데 그 이면에는 보다 화려하고 화끈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TV를 위한 배려가 담겨있다. 이렇게 스포츠와 미디어의 결합은 경기의 룰을 바꾸기도 하고 볼거리가 없는 종목은 주변으로 밀려나는 서러움을 겪게 된다. 이처럼 스포츠에 TV가 개입하면서 스포츠는 하나의 상품화되는데 월드컵 대회야 말로 민족, 스포츠 스타, 미디어, 거대 자본이 합작해서 만들어진 거대한 기획이라 할 수 있다.

스포츠와 정치
스포츠와 정치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별개로 보이지만 오히려 스포츠와 정치는 늘 깊은 연관을 맺어왔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의 LA올림픽이 반쪽 올림픽으로 치루어것은 미소간의 대립이라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지되어 오던 냉전체제의 해체의 시작도 미국과 중국과의 탁구가 매개가 된 소위 󰡐핑퐁 외교󰡑가 계기가 되었다. 전두환 정권이 1986년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유치한 것도 스포츠를 통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 정서를 통합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스포츠는 정치의 간접적인 수단이 되기도 하고 그 자체로서 중요한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스포츠는 전 국민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중요한 정치적 기제가 되기도 한다. 이번 독일 월드컵 조직 위원회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훌리건들의 폭력 방지 문제였다고 한다. 유럽 사회에서 축구는 원래 노동 계급의 스포츠였고 축구는 그들의 통제되지 않은 에너지를 축구장이라는 테두리 속에 가두어 두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축구를 통해 통제되지 않은 노동 계급들의 폭력적 에너지가 축구장 바깥의 기존의 사회 체제를 위협하지 않도록 숨통을 터주는 일종의 완충장치가 되었는데, 훌리거니즘은 그 완충 장치가 일시적 결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파열음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스포츠 그 이면에는 대중 조작이라는 놀라운 정치적 수단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 열광적 거리 응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전국의 경기장과 거리에서 붉은 티셔츠로 하나가 되어 대-한 민국을 연호하는 붉은 악마는 열광의 주체이자 애국의 상징이 되었다. 월드컵을 통해 사람들을 무엇을 즐기는가? 먼저 월드 스타들의 현란한 몸동작과 투혼을 즐긴다. 또한 대규모 응원에 참여함으로써 선수들과 하나가 된 붉은 악마들은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집단적 광기에 가까운 집단적 흥분에 도취된다. 현대 사회와 같은 조직화된 사회에서 날로 왜소해진 사람들은 거리 응원을 통해 집단적 카타르시스와 연대를 느낀다. 특히 거리 응원은 정서적 기능이 약화된 가족과 직장에서 맛볼 수 없는 짜릿한 유대감을 느낀다. 스펙터클한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던 개인들이 비록 일시적인 연대 의식이라 할지라도 거리 응원을 통해 집단적 정체성을 통한 환희를 경험하기 위해 전국의 거리를 가득 매운 것이 아닐까?

월드컵이 남긴 것
비록 목표했던 16강에는 들지 못했지만 우리의 태극 전사들 모두 잘 싸웠고 최선을 다했다. 거리 응원을 통해 분명 우리는 하나임을 확인했고 지역과 계층, 세대를 넘어 우리는 하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번 월드컵이 순수한 국민적 축제로 펼쳐지길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의 열기가 거대한 언론과 기업 자본이 합작해 만들어진 대중조작의 교묘한 수단은 아니었는지는 분명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월드컵 기간 동안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이 월드컵의 열기 속에 묻혀버렸다. 5.31일 지방 선거에서의 여당의 참패,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농민들의 절규, 한반도의 안보와 직결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뉴스도 월드컵이라는 블랙홀에 묻혀버렸다. 밤을 꼬박 세워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쳤던 거리의 함성이 사라지면서 국민의 일부는 무대의 막이 내린 후 배우처럼 공허함과 허탈감에 빠져 있다. 집단적 공황 상태라고 할까? 월드컵이라는 광풍을 지나간 자리에 지금부터라도 추스러야 할 것이 많다. 국민 각자가 제자리에서 다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집단적 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체크포인트>
훌리건; 훌리건은 유럽의 축구 경기에서 집단적인 난동을 부리는 젊은이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경기장 내외에서 일으키는 폭력 행위를 훌리거니즘(hooliganism)이라 한다. 훌리거니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치적 해석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이들의 폭력적 행동은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된 노동 계급들이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그들의 억압된 욕망을 폭력적으로 분출하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71년 나고야 세계탁구선구권대회에 출전했던 미국 대표단 15명과 기자 4명은 대회 폐막 직후인 4월 10일부터 8일간 중국을 방문,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총리와 면담했다. 이를 계기로 그해 7월 헨리 키신저 당시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비밀리에 중국을 찾았고, 이듬해 2월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과 중국과의 정식 외교 관계가 이루어지고 냉전 질서의 해체를 가져오게 되었다.


* 김종배 강사는 = 경북대 사회학과 졸업, 前 EBS 방송강의, 現 강남대성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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